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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목회서신

설교나눔 5월 20일

Posted on 2018년 5월 22일 by 원화 조

본문: 골로새서 3:1-3

요약: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보낸 메시지

 

문제1: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교회가 (           ) 교회 였다.

문제2: 우리는 그리스도와 (         ) 자들입니다.

문제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된 우리는 (          )이 되었다.

문제4: 죽고 새로 태어난 우리는 (     )이 계신 그 곳에 함께 있습니다.

문제 5: 이 땅은 (           )이 아니다.

 

[토론문제]

  1.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었던 것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2. 말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자가 되기 위해, 어떤 말을 사용할까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봅시다.
  3. 현실의 삶보다, 본향의 집을 그리워 한 적이 있나요?
  4. 그 집에 갈 때 까지 그리스도 만을 위해 여행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씩만 이야기 해 봅시다.

기도제목: 전도대상자를 품도록, 목자 수련회를 위해

교회광고: 제자훈련 사역훈련 졸업식(25일), 목자수련회(27~28)

암송성구: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 3장 22절~23절)

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Lamentations 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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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30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제자훈련이 10여년이 넘어가고, 사역훈련이 8년을 넘어가면서 나타난 어려움은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마치게 되고 나서 얼마가 지난 후부터 계속적으로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내적 갈증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은 그 문제는 제자훈련을 처음 계획하면서부터 속으로 고민하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성경공부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커리큘럼에 따라서 진행하는 것과 다양한 성경공부들을 수평적으로 두어서 선택하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종류가 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들을 수평적으로 두어 선택을 하게 하는 경우는 다양한 과목들을 한 없이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제공됩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공부를 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서 나오는 불만은 제대로 체계화된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선택해서 좋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매 학기로 끊어지고, 성경공부는 되는데 훈련은 안 되어서 신앙의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훈련과 같은 과정의 훈련은 받는 동안과 받은 후의 일정 기간 동안에는 마음에 감격도 있고, 변화의 기쁨도 있는데 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다음의 과정이 없다는 것에 불만들을 갖습니다. 그렇다고 그 위의 어떤 과정을 둔다고 그것에 만족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다음의 과정을 제시하면 갑자기 두려움들이 생깁니다. 제자/사역훈련 때의 힘듬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훈련들은 재미없어 합니다. 과거의 강한 훈련을 통한 결과의 기대감은 있기에 이제는 그리 힘들지 않으면서 결과는 그 때보다 좋은 것을 찾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제자/사역훈련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물론, 부교역자들을 통한 성경대학을 여러 해 동안 만들어보았지만 참여율이 그리 좋지는 못했습니다. 요구하는 것과 달리 정작 시작하면 그리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교역자들의 잦은 이동은 좋은 질의 공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일에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근에 와서야 커피브레이크로 대충 가닥을 잡으면서 지금 장로, 권사님들이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곧 이 훈련이 전 교회적으로 공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이 이끌어 가고, 양육훈련과 커피브레이크는 성도들 사이에서 평생교육으로 이어지는 성경공부의 근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어느 새 저도 목회하는 일정이 제자/사역훈련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9월부터 그 다음해의 일정 기간 동안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목회의 스케줄을 갖습니다. 제자훈련 기간에는 가능하면, 특별한 필요가 아니면 비우지 않는 일정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외적인 필요들은 가능하면 5월부터 8월 사이의 제자/사역훈련이 없는 기간에 행하려 하고, 혹시 봄철에 부흥회 요청이 있어도 최소한 3월 이후로 하여 사역훈련은 마치고 움직이려는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지역의 목회자협의회의 월 회의도 거의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다른 교회 목사님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의 표현들을 하실 때가 있기도 합니다. 마치 나 혼자 목회를 열심히 하는 것과 같은 모양을 갖는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일을 옮겨라, 그 날만 다른 이들에게 맡기면 안 되는가?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상황들을 우리 성도들이 알다시피 제가 임의적으로 날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능한 날짜를 고려하다 보니 훈련이 일주일에 널리 펼쳐지게 되었고, 훈련을 목회의 생명으로 여기다 보니 일주일이 꽉 차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9월부터 5월 첫 주 사이에는 한 주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화요일 오전과 저녁, 수요일 오전, 목요일 저녁, 주일 오후 등등의 훈련들은 제 일주일의 일정 전체를 결정하는 박혀 있는 시간들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이 한 주 한 주가 지나갑니다. 물론, 그 시간들의 감격과 감사가 있기에, 그것이 우리 교회의 생명인 것을 알기에 기쁨으로 그 날들을 기다립니다.

제자/사역훈련은 그 어떤 목회의 일정보다 제게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시간들로 인해 운영위원회, 목장위원회 등등의 모임들과 성도들을 만날 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하여도 그 어떤 힘듬을 감수하더라도 지켜야 할 훈련의 과정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교회가 자라왔고, 그 제자훈련으로 헌신된 성도들에 의해 우리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만큼 중요하다는 평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결과를 이렇게 풍성하게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은 이 훈련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생명으로 인식하여 행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종 된 저는 여기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목회자들마다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셔서 원하시는 소명들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훈련사역만이 모든 것이고,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 훈련목회를 원하셨고, 그 부분을 통해 우리 교회를 이루어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게는 훈련은사를 주셨고, 그것이 제 목회의 근간이 되도록 하나님께 준비시키셨고, 원하신 것이기에 제 목회 전 시간을 이를 통해 열매 맺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저는 제자훈련을 하나님께서 제제 주신 소명의 TOOL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그 길로 왔고, 간혹 이런 저런 불평과 불만이 있어도 훈련목회 만큼은 결코 물러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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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9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제자훈련을 진행 하던 중 10월이 되면 두 주간의 특별시간을 갖는 스케줄이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훈련은 부교역자들에게 부탁을 하지만 사역훈련에서는 전도훈련과 선교영화상영을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안 하지만요. 그 때 저는 중국선교를 다녀왔었습니다. 그것은 지역의 소망교회목사님의 요청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2008 또는 2009년쯤 되었을 것입니다. 소망교회 목사님의 만남의 요청이 있어서 갔더니 제게 소망교회 중국선교를 하는 일에 지도자 훈련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이유로 거부를 했었죠. 그러자 그 시기 외에는 어려운데 지역에서 함께 선교한다는 마음으로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이나 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저 또한 요청을 하나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향한 사역을 하는데 소망교회도 우리 교회의 지역 연합사역을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는 것으로요. 당시에 저희 교회는 샌디에고 교회연합사역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 가지를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성가제,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등…..

그렇게 해서 서로 일종의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매년 가는 것은 제게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저는 2년에 한 번 가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커리큘럼에 두 주간의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제 목회 일정에 많은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저는 가지 않는 것으로 죄송함을 전했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자훈련에 부교역자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역하는 모든 부교역자들에게 제자/사역훈련을 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를 이해하는 것, 담임목회자의 목회의 방향을 익히는 것에 있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목회를 위하여 훈련을 시키는 것에도 큰 목적이 있습니다. 누구도 교역자들에게 제자훈련을 시켜주는 곳은 없습니다. 단지 테크닉과 정신을 가르쳐 줄 뿐이죠. 제가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용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제자훈련 진행의 과정을 진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있는 동안에 훈련에 동참함으로 자신이 담임목회를 할 때에 준비된 사역의 능력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제자훈련 하는 동안에 신앙의 의문들에 대하여 성도들은 어떤 질문을, 어떤 생각들을 하는가? 담임목사는 그 문제들에 대하여 어떤 답을 하고, 어떻게 성도들의 질문을 풀어가는가? 하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훈련을 가끔 원치 않는 부교역자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알아서 하도록 했더니 결국은 별단 행동을 하거나 가르침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들이 나타나서 그 후로는 예외를 두지 않거나, 제자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오래 같이 사역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자훈련이 일정 기간 진행이 되고, 부교역자들 중에 사역훈련을 마친 FULLTIME 사역자들이 생기면서 그 분들에게 반을 맡기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훈련이 될 수 있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2-3년을 진행하다 그것도 중단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부교역자들은 우리 교회에서 평생을 살려고 하는 분이기보다는 자신의 목회의 길을 가는 과정에 훈련의 기간을 우리와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미래의 길에 필요한 방향이 나타나면 그 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아니, 가는 것이 옳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 또한 그 과정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기쁘게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결과 제자훈련 도중에 떠나므로 훈련 도중에 인도자가 없어지게 되는 반들이 생기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 반을 제가 다시 담당하다 보니 느껴지는 것이 교육의 연계성이 문제가 생기고, 그 반의 훈련생들의 마음이 모아지기가 쉽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하는 수 없이 여건상 부교역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제자훈련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요청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가고 싶은 자리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부교역자들은 성도들과 신앙의 문제에 대하여 끈질긴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의 경우에는 내가 목회해야 할 성도의 성장을 위하여 끈질기게 싸워야 합니다. 그 분이 우리 교회의 가족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교역자들은 다른 의견들이나 부딪힘이 생겼을 때 피하고 맙니다. 그 성도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그 부분에 대하여 요청을 했지만 결국은 실천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함이나 절실함의 부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효과적인 교습방법의 결손은 어떻게든지 넘어갈 수 있지만 훈련생들에 대한 절실함의 부족은 제자훈련이 훈련이 아닌 성경공부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충분히 커서 담임목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아예 넘어서면 그러한 결손을 감수하면서까지 부교역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전체적인 유익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제자훈련을 부교역자들 손에서 거두어들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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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8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초기의 제자훈련은 지금처럼 숙제가 많지도 않았고, 내용의 요구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 많은 분량의 내용들을 다 요구할 때, 훈련을 받으려는 성도들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또, 아직 우리 교회 나름대로 어떤 훈련의 내용들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확정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재와 성경읽기, 그리고 암송, 책 2, 3권 정도가 전부였었습니다. 그래도 1기 때는 기대감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참여했기에 억지로 우겨서 이끌어도 진행이 되었었는데, 2기부터는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큰 절망감으로 다가왔고, 고민을 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진행되는 내용으로 볼 때는 제자훈련이라는 것 보다는 제자훈련 교재를 가지고 하는 성경공부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필요한 모든 내용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해달라고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5기쯤 와서부터 내용이 조금씩 늘었던 것 같습니다. 책도 서서히 5권으로 늘었고, 에세이도 몇 개씩 넣기 시작했고, 생활숙제도 포함시켰습니다. 새로운 교회로 와서 교회의 자체 집회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섬김의 숙제인 베이비시팅이 더해졌고, 아마 10년은 지나서 사역인턴쉽도 더해지게 되었고, 각종 세미나들이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사역인턴쉽의 경우에는 다른 어느 교회도 시도해보지 못한 것으로 남가주사랑의 교회에서 세미나 때에 이것을 공개하자 국제제자훈련팀에서도 놀라워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제자훈련을 이렇게 20년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제자훈련 목회자 세미나를 참석한 이들 중에 3% 미만의 교회가 10년이 넘어도 제자훈련을 여전히 한다고 통계를 이야기합니다. 제자훈련이 지속되기 위하여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성도들의 동의 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시작했다가 교회의 리더쉽들과 마찰을 빚습니다. 담임목사가 제자훈련을 한다고 할 때에는 새로운 담임목사가 무언가를 한다니까, 또 담임목사가 배워와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니 무심코 놔두었지만, 곧바로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 그리고 나이가 든 남성도들의 경우에 자신의 속을 열어야 하는 일들이 요구되면서 부담스러워 하고 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피함이 어려워지면 제자훈련 자체의 무용성과 무효과를 이야기하며 방해합니다. 또, 제자훈련으로 인해 목회자의 집중력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을 핑계 삼아 제자훈련을 비난하며 다른 목회의 방향에 집중해 줄 것을 요구하며 저항합니다. 그래서 3년을 넘기지 못하는 교회들이 많다고 합니다.

둘째로, 목회자의 의지가 약해서입니다. 위와 같은 저항이 생길 때 목회자가 이를 끝까지 견디어 갈 의지가 약하게 되면 결국 어려움 앞에서 중단하게 돼버리고 맙니다. 결국 목회자는 또 다른 방향을 배워오게 되고, 성도들은 목회자의 빈번히 바뀌는 목회방향에 신뢰를 잃게 되어 좌초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 번에 부흥회로 갔던 교회의 목사님은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에서 10년 가까이 부교역자를 하였음에도 제자훈련을 쉬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성도들의 참여율이 적다는 것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여성도들을 모아서 팀을 구성하여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중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강력하게 권했고, 사모님이 모은 반을 목사님이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사님의 훈련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왔습니다.

셋째로, 더 이상 제자훈련을 받을 성도들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 이유는 크지 않은 교회에서 1기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을 훈련을 받게 하는 욕심을 부림으로 인해 다음 해부터는 받을 수 있는 인원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모두가 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지역의 교회의 숫적 성장이 눈에 띠게 되는 일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시작하다 보니 2년차나 3년차에 이르러서는 대상자의 절대적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또, 전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없이 이민교회에서 제자훈련이 몇 년을 갈 수 있겠습니까?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곧 숫자적인 소진이 오고 맙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시들해져 버리고 맙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도 위험군에 속했었습니다. 첫 해에 거의 50%에 가까운 성도들이 제자훈련을 받았으니 다음 해에 어려움이 올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가족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2기와 3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서 제자훈련을 할 수 있는 성도들을 모아주셨습니다. 어느 부족할 때는 대학부와 청년부원들까지 참여하게 하여 제자훈련의 맥이 끊이지 않게 했고, 억지로 가정으로 찾아가 두 세 사람을 놓고 훈련을 하기도 하고, 젊은 성도들은 집으로 불러들여 저녁식사를 공급해가며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계속 제자훈련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 성도들의 함께함의 은혜입니다. 어느 목사인들 제자훈련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를 원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니 결국 중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목자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권면은 제자훈련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협력이었고, 제자훈련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하게 되거나 경험한 이들을 알게 된 우리 교회의 앞서 있는 분들의 신뢰가 지금까지 제자훈련이 지속되는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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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7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1999년 9월에 시작한 제자훈련 1기는 제게는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자훈련 자체보다는 외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IMF로 인해 한국이 어려운 관계로 제자훈련을 하던 분들 중에 몇 분이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기에, 제자훈련을 중단해야 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교회 내부의 여러 어려움이 저를 흔들었습니다. 아마 제자훈련 그 자체의 감격이 아니었으면 저 또한 견뎌나가기는 힘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갈등의 요인들이 제자훈련을 구성하는 성도들 안에도 있었기에 제 마음은 제자훈련이 첫 해에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습니다.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제자훈련에 대한 그 절박함은 그 과정에서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훈련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제자훈련은 좌초의 위기에 빠져 있고, 중반에 이르러 제 힘은 소진되어 회복을 위한 긴 세월이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저를 사랑하셔서 제자훈련이 도리어 저를 살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미 제자훈련을 통하여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게는 너무도 힘이 들었던 1999년을 넘기고 2월에 들어서서야 누더기같이 다 헤어진 제 마음을 추스리고 목회와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1기 제자훈련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함께 고통을 겪어간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 하나를 크게 배웠습니다. 제자훈련의 ‘기도’라는 제목 때 나누는 대화식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제자훈련 첫 해에 큰 파도를 넘어가게 하시므로 저를 다음을 위하여 강하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1기훈련이 마치고 그 해 여름에 2기 훈련생을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1기 때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던 20여명과 그 사이에 새로 교회에 등록한 분들까지 합하면 약 40여명 정도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정작 제자훈련 신청을 받으려고 나름대로 조사하다보니 난감한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할만한 분들은 이미 1기에 다 해 버린 것입니다. 막 새로 온 분들은 어렵고, 그 외에 제자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 중에는 훈련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자훈련 세미나에서 하던,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 기억이 났습니다. 숫자적으로 고갈된 성도들 앞에 서 있는 목회자의 난감함에 대한 것입니다. 여전히 제자훈련을 받고 싶어 하는 몇 몇 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분들 외에는 억지로 반 협박, 반 구걸의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벌써 2기부터 ‘집중과 선택’이라는 제자훈련의 원칙 중 ‘선택’의 부분은 사라진 것입니다. 책에서와 세미나에서는 제자훈련생을 모집하는 일에 선택이라는 것을 원리로 제시하여 아무나 받지 말고 받아야 할 사람들을 엄밀히 살펴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원칙은 우리 교회에는 해당되지 않고 말았습니다. 선택할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자훈련 세미나의 강의 때 그 이야기를 모두들에게 하기도 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중 ‘집중’은 잘 지켜 온 것 같은데 ‘선택’은 웬만한 이민교회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이민교회로서 중견교회 이상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교회에서마저 ‘선택’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꾸려서 2기 제자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매주가 실망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교회가 건물이 없는 관계로 모일 곳이 없었고, 성도들에게 어느 특정한 장소를 정하여 모이라고 하면 멀어서 못 간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대답이었기에 할 수 없이 그 지역에 모일 수 있는 분들을 모아 집 근처의 성도 가정에서 모이게 되었기에 한 팀에 3-4명 정도 되는 팀들이 여럿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출장훈련의 과정을 가게 됩니다. 어쩌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훈련생들이 2명이라도 빠지는 날에는 뻘쭘하게 여성도와 둘이 마주 앉아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당황스러움도 경험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장난감들을 가방에 싸고, 윤홍이를 업고 성도의 가정으로 가서 다른 방에 놀이기구를 준비합니다. 거실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동안 제 아내는 아이들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낮에 이루어지는 제자훈련에는 젊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이 가정 저 가정에서 장난감들을 모으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놀이기구들이 항상 풍성히 실려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고, 또 저녁시간은 부담스러워 했기에 사택에서 하는 제자훈련을 열었습니다. 일주일이면 최고 11개의 훈련시간을 운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새 훈련생들이 갑이 되고 제가 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사람이 을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숙제들을 해 오지 않아서 진행이 어려울 때도 많았고, 암송도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않고 억지로 오는 분들이 있어서 제자훈련 모임은 제게 많은 회의감을 주는 시간이 되었었습니다.  또 쉽게 빠지는 분들이 있어서 가끔은 훈련이 파행적으로 진행되는 때도 있고, 할 수 없이 다른 요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훈련도중에 서로 분위기를 조성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말을 끌고 가는 일들이 종종 생겨서 젊은 저는 진땀을 빼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억지로 모았으니 여러 부작용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괜히 훈련을 했다는 것 외에 남는 것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매주 매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7년의 약속을 했었기에 이 과정을 넘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주셔서 정말 힘들게 2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매 번 제자훈련 시작의 기도는 제게 눈물의 간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한 분들은 언제나 성실하십니다.

그 생각이 납니다. 하미연집사님 댁에서 낮 제자훈련을 할 때입니다. 예전의 집사님댁은 카멜마운틴골프장 15번홀을 끼고 있었습니다. 골프장을 향해 있는 거실의 커튼을 열고 한창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분이 폭이 좁은 집사님댁 수영장 쪽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입니다. 골프공을 찾으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하다 놀랬는데,  더욱 놀란 것은 그 얼굴이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의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갑작스런 상황과 갑작스런 익숙함 때문에 얼마나 놀라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 분도 하집사님 댁인지 몰랐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2기의 어려운 과정이 있었기에 그 다음이 있었고,  그 과정이 저로 하여금 제자훈련을 이끄는 일에 훈련을 받게 되는 귀한 기회들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2기인지, 3기인지 내용들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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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6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제자훈련은 부임한 지 2년째 되는 해인 1999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여러가지 불안한 소식이 많던 해 였습니다. 한국의 IMF로 인하여 우리 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주재원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제자훈련과 가정교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여러 상황에서 준비하려니 마음 또한 무거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시작부터 누구는 연말에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들리면서 제자훈련에 참여할 이들이 절대적인 부족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들도 있었습니다. 또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8월 교역자수련회의 교통사고가 있어서 저와 제 아내는 여러모로 마음으로 긴장하기도 한 상태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 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시작은 총 20여명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성도들이 약 45명 정도 출석을 하고 있을 때인데 20여명이 제자훈련을 시작하자 마치 모든 성도들이 제자훈련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기대가 무척 컸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3개 반 정도로 구성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평일 낮 반 1개에 저녁 반 1개, 주일 반 1개가 열렸습니다. 여성들로 구성이 된 평일 낮 반들과 직장을 다니는 분들 남녀로 구성된 저녁반이 세워졌고, 평일에 모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주일 반이 세져서 야심차게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들의 기대감과는 달리 저는 무척 두려움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긴 제자훈련을 해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을 가르칠 때도, 동양선교교회에서 성인교육부 리더들을 가르칠 때도 길지 않은 교재들의 연속이었고, 성경공부들이었지 체계화된 8개월의 훈련의 과정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이 많았었습니다.

그 때의 각오는 일단 두 가지를 세웠습니다. ‘목숨 걸고 한다.’, ‘최소한 7년은 한 후에 가부를 평가한다.’였습니다. 그 둘 다 이 제자훈련을 시작한 고옥한흠목사님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999년에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열렸던 제 6기 해외목회자제자훈련세미나를 참석하는 중에 고옥한흠목사님의 광인론과 제자론의 강의를 통해서 배운 것의 가장 큰 사항은 제자훈련은, 사람을 키우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여러 번 반복하여 강의테입을 들었고, 그 후로도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하여 들었으며, 고옥한흠목사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제자훈련세미나에 올 때마다 이 광인론과 제자론의 강의를 들으러 올라갔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제 연약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고, 또 한 편으로는 건강상의 문제로 언제 소천할 지 모르는 그 목사님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직접 더 듣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의 근거는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의 뒷부분 실천편에 가면 옥목사님이 제자훈련을 하면 7년을 지속하고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중단하지 말고 포기하더라도 7년은 하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절대 가치를 논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감격의 시작이었고, 감격의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건강상의 이유로 장로님이 중단하기를 원하셔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제자훈련이 흔들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정말 그 하나에 목숨을 걸자는 생각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제자훈련이 시작될 때 찬양을 하고 통성기도를 하면 눈물만 났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하나님 우리 교회의 목회가 제자훈련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이 제자훈련에서 성도들을 세우지 못하면 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하는 하소연과 절실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제 마음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이 기도를 다시 합니다. 이 번 19기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은 ‘제자훈련에 제 목숨이 달려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19기의 세월이 지났지만 저의 마음은 여전합니다. 우리 교회를 세우신, 그리고 저를 이 한빛교회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저를 통해 사람을 세우라는 것이고, 그 사람을 세우는 길로 제자훈련이란 도구를 저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 시작하고, 우리 성도들도 처음 이러한 훈련을 받는 것이어서 모두가 새롭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갔던 제자훈련이어서 참으로 즐겁고 매일 매일이 기뻤습니다. 얼마나 열심히들 준비해 오는지 저 또한 마음에 감격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권사의 직분을 가졌던 그 당시 젊은 한 여집사님은 성경을 읽고는 그 내용을 노트에 얼마나 꼼꼼하게 적어오고,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공부를 하는지 신학교에 가도 되겠다는 농담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열심히 참여했던 제자훈련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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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5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2004년일 것입니다. 그 때는 지금의 본당의 철거를 마치고 콘크리트 바닥에 의자를 놓고, 이동용 임시 강단을 만들어 놓고 예배를 드리던 때입니다. 주중에는 공사를 하고, 토요일이면 공사 잔재를 치우면 오후에 성도들이 모여서 바닥 물청소를 같이 하고, 의자를 놓고 강단을 이동해 와 설치하고, 예배 방송장비들을 설치하곤 했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매주 토요일마다 전 교인들이 나와서 교회 안팎으로 청소를 하던 때이지요. 교육부 시설도 만들어야 하고, 안팎으로 위험한 물건들, 다칠 수 있는 못들이나 각종 위험물들을 치우고, 조경을 위해 손을 보던 때입니다.

토요일에 열심히 온 바닥에 물을 부어 솔로 문질러 깨끗이 닦아 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화학품 냄새가 예배 중에 나는 것입니다. 저야 예배 자체에 신경이 다 가 있어서 느끼지를 못했는데 앉아 있는 성도들에게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와서는 두통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소에 있는 분들이 화학약품 중화제들을 가져와서 토요일에 뿌려 해결하려고 했음에도, 청소에 더 신경을 썼는데도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일에 본당 전체를 무릎으로 기면서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몇 군데가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곳은 콘크리트가 약간씩 부식되어 있던 바닥의 부분들이었습니다. 그 곳마다 동일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그곳을 집중해서 중화제를 뿌렸습니다. 그래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을 파 내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토요일에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작업을 하면 늦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일에 교역자들끼리 해 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단 한번도 콘크리트를 깨는 기계를 만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여간 장비렌트하는 곳을 통하여 HEAVY DUTY를 렌트하여 화요일부터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첫 시도했습니다. 온 몸이 콘크리트 범벅이 됩니다. 정특균목사님과 함께 한 사람은 물을 부으면서 전기굴착기로 바닥을 깨어보니 부식된 콘크리트 속으로 앨범을 만들던 화학약품이 스며들있어서 콘크리트가 삭아 있었고, 그 밑의 모래들이 완전히 오염이 되어 있어서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힘듬 보다는 원인을 찾은 기쁨에 아침에 출근하여 둘이서 그 작업을 합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온 몸은 기계의 떨림에 의한 후유증으로 시달렸고, 옷과 얼굴과 머리는 온통 물에 젖은 콘크리트 잔해들로 뒤덤벅이 되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안경은 콘크리트가 튀어 수많은 흠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그 때가 이근환목사님이 FULL-TIME사역자로 오던 때입니다. 굴착기 작업 두 번째 주였습니다. 출근할 때 작업복을 입고 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 부교역자로 출근하는 것이라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준 정장을 하고 왔더군요. 그 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옷을 잘못 입고 왔다고 구경만 할 수 없어서 작업에 뛰어들었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고된 일이어서 인지 훗날에 그 날의 어이없음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첫 Fulltime 부교역자로 출근했는데 하는 일이 막노동이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집에 돌아가니 사모님이 남편의 그 모습을 보고 놀라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곳 저곳의 콘크리트를 깨고 그 안의 모래를 깊고 넓게 퍼내어 새로운 모래로 채우고 냄새를 맡아보고 홈디포에서 부대로 사온 콘크리트를 개어 채워넣는 작업이 매일 이루어졌습니다. 토요일에는 굳어야 또 물청소를 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기에 한꺼번에 하지 못하고 몇 곳씩 나누어 해야 만 했습니다. 아마도 한 달 정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해 본적이 없는 관계로 일이 매끄럽게 되지가 않아 바닥이 고르게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냄새를 없앨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기뻤던 기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역자들의 고생이 그 때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작업복을 입고 와서 하루종일 나무를 자르고, 못을 빼고, 작업하는 분들의 일을 돕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희의 도움이 교회 공사를 하루라도 줄일 수 있다면, 저희의 참여로 일하는 성도들이 조금 더 기쁠 수 있다면, 또는 담임목사의 참여로 공사를 맡은 분에게 조금 더 교회에 대한 소명감이 생길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하루 하루 작업에 참여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 교역자들끼리의 공사가 마치면 저녁에 올 성도들을 기다립니다. 부교역자들을 돌아가고 성도들과 같이 저녁 작업을 합니다. 끝나면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문을 잠그고 집에 돌아가며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시간이 어찌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2004년 한 해를 다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성도들간의 정들이 깊어지고, 교회에 대한 사랑들이 깊어져 갔습니다. “함께 수고하고 함께 누리는 교회”라는 표어가 이렇게 실천되면서 교회는 화목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되었습니다. 그 때 교역자들에게 외쳤던, 그 후로 새로이 오는 모든 교역자들에게 외치는 이야기는 “목회는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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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4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2003년 11월 30일 감격의 추수감사절 예배는 드렸지만 그 다음날부터의 해야 할 건물에 대한 작업은 엄청났습니다. 작업의 계획은 두 기간으로 나누었어야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작업을 해야 하니 반쪽을 먼저하고 나머지 곳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반쪽이 끝난 후에 다른 반쪽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교회 건물은 입주하는 때에 온전히 교회가 다 쓸 수 있지 못했습니다. 앨범공장이 있던 작업실쪽은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있지만 사무실로 사용하던 지금의 초등부과 사무실쪽은 온전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물로 입주하면서 은행의 대출상환금을 모두 갚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온전한 쪽은 임대를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 후로 2년이 넘게 교회는 임대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교회는 지금의 친교실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먼저 했습니다. 일단 지금의 본당 쪽을 작업을 하기로 했기에 친교실 쪽에서 임시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닥을 정리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강단을 만들고, 여러 복잡한 벽의 문제를 해결할 커튼을 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어설픈 예배실을 만들었고, 교육부실은 창고를 개조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한 교회의 공사는 조금씩 조금씩 몇 년에 걸쳐서 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 어설픈 모습의 인테리어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빛교회는 항상 공사중이네요.’ 그 말이 맞았습니다. 실제로 중간에 있는 교육부실을 만든 2013년까지 교회는 항상 공사중이었습니다. ‘UNDER CONSTRUCTION’ 저는 이 말을 즐겼습니다. 완비된 교회가 아닌 계속 만들어가는 교회의 모습이 도리어 교회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 공사를 예상하고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공사를 수주하려는 이들도 오기도 했고, 여러 목적으로 교회에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마다 많은 실망을 하게 되어 떠나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공사의 대부분의 작업은 우리 성도들이 했습니다. 부동산업자와의 계약에 따라서 지금 본당과 유아부실 공간까지의 철거를 업자에 의해 진행해주기로 한 결과 모든 파괴된 부분들을 철거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성도들은 매일 저녁마다 와서 철거하느라고 뜯어놓은 목재 중에서 쓸만한 나무들을 분리하여 못을 제거하는 작업들을 하였습니다. 또한, 토요일이 되면 성도들은 모여와서 교회 주변의 둘러싸인 유카립투스 나무들을 잘라내어 토막을 내어 버리도록 하였고, 닦고, 메우고, 정리하는 일들을 끝도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모자와 수건들을 두르고 손에 장갑을 끼고 못을 빼고 나무를 자르고 정리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너무도 감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기간 중에 회사를 마치고는 항상 교회에 와서 작업을 하는 남편이 안타까웠는지 제게 불평 아닌 불평을 하는 아내들의 모습에 답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작업에는 학위도 필요 없었고, 남녀도 의미 없고, 직업도 전공도 고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막노동과 몸으로 하는 일들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교실을 페인트 작업을 할 때는 모든 성도들의 옷이 페인트로 얼룩을 이루었고, 지붕작업을 할 때는 입은 옷에 아스팔트가 묻어 버려야만 하는 일들이 다반사였습니다. 돌아서면 회사를 운영하고, 전문직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오면 나무를 타고, 사다리를 오르고, 망치질과 톱질, 그리고 못을 빼고 페나무를 옮기는 것이 놓여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한심해만 보이던 교회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모양을 변화하더니 다른 교회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우리들에 의한 예배실의 모습, 교육부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지냈던 부모들이 반찬투정을 하는 자녀를 보면 마음이 아프듯이 우리 성도들도 저도 교회의 건물이 ‘나쁘다. 지저분하다, 왜 이렇게 FANCY하지 못하는가?’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서글퍼집니다. 멋진 건물을 구입하여 전문가의 손을 거쳐 아름답고 깨끗하고 쓰임에 맞는 교회건물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에 대하여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룰 수 없는 우리 교회로서는 성도들 모두가 어설픈 건축자로서 이러 저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과 전문가가 아닌 이제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성도 중의 기술자를 선정하여 싼 값에 그와 함께 작업을 해야 했던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냥 아픔만은 아닌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 결과 교회를 사랑하고, 내 교회로 마음을 갖게 되는 귀한 결과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잘 갖춘 다른 교회를 볼 때면 한 편 마음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간의 성도들의 땀과 수고, 그리고 한 버켇은 먹었을지 모를 먼지를 생각하면 교회 건물에 대한 이런 저런 평가는 마음에 아픔을 넘어 가끔은 서운한 마음을 품게 하기도 합니다. ‘모르니까 그러겠지….’라고 하면서도 일어나는 서운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우리의 아픔을 몰라주는 것이 서러운 것이겠지요. 지금 이렇게 선택하여 올 수 있는 교회가 되기까지 어떤 수고들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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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3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2003년 9월부터 시작된 체육관에서의 광야생활이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들이 되었던 감격과 또 달리 제 마음에 기도는 매우 절실 했었습니다. 새로운 건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건물을 구입해놓고도 건물사용허가가 나오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될 때 나타날 교회 성도들의 여러 부작용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무척이나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기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추수감사절예배를 그곳에서 드렸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운영위원들에게도 그 기간을 놓고 기도하자는 제안을 하였었고, 성도들에게도 결국 공개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제게 무리한 생각이라는 말들을 하였었습니다. 아무리 짧게 되어도 3개월인데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나름대로는 DEAD LINE을 정하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선택인가? 하는 것과 달리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월 마지막주일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무척 긴장되고 초조한 기간들을 보냈습니다. 당장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볼 것이 없는 구입된 건물을 돌아보고, 지금과는 달리 황폐하게 되어있는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서 기도도 하고 마음도 모으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 때는 지금의 패티오 콘크리트 부분이 없이 다 죽어 있는 가파른 땅에 큰나무들이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습니다. 유카립투스와 소나무였습니다. 1부 예배는 콘보이의 도서실에서 드리고, 2부예배는 체육관에서 드리던 어느 주일 샌디에고 산불이 났습니다. 기록되기를 <CEDAR FIRE> 라고 이름된 샌디에고 최대의 화재였습니다. 이 화재는 샌디에고 전역으로 튀어서 북에서 시작된 것이 남쪽 출라비스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넓은 지역에 화재가 날 수가 없다는 생각에 테러까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스크립스 랜치 지역인 저희 동네에만도 150채가 넘는 집들이 불에 탔습니다.

저는 주일 1부예배를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불에 대한 소식도 몰랐는데 갑자기 성도들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가 불타고 있는 것이 TV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놀라서 TV를 켜보니 저희 동네였고, 그제서야 밖의 어수선함이 느껴져 나가보았더니 저희 집 계곡 건너편의 집들이 불에 타서 불이 우리 집 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미니밴에 긴급한 것들을 싣고 예배를 드리러 떠났습니다. 우리가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것을 보면서 옆집 사람들이 어디에 가느냐고 묻기에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하니 어이가 없어 하더군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외에 길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은 파라구아이의 강두호선교사님이 설교하는 날이었습니다. 1부예배를 도서실에서 드릴 때 설교하시고는 이제 체육관으로 옮기어 2부예배 설교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이곳 저곳에서의 불 소식이 들리면서 이제 우리 성도들의 집이 있는 동네들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배 바로 전에는 805번과 콘보이 근처에 경비행기까지 추락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곳 저곳의 가게들이 불타오른다는 소식이 들렀고, 온 샌디에고의 하늘은 연기로 가득차 있어서 탄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출라비스타의 Sweetwater lake 근처에서 불이 붙어서 출라비스타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를 들게 되어 마음으로 예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염려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과 운영위원들에게 잠시 상의를 하며 밖의 소식에 귀를 열어 둘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강선교사님께도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는 해 두시기를 요청했습니다. 혹시 제가 사인을 하면 설교를 중단하기로요. 예배가 시작되었고, 찬양이 끝나고 설교를 막 시작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지역에 Evacuation news가 발표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모든 상업건물에서 사람들이 떠나기를 방송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을 하고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때가 설교를 시작한지 5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성도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같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장소를 정리하는 순서로 들어갔습니다. 강선교사님은 더 도로가 막히기 전에 LA로 올라가시도록 권했습니다. 최단시간의 예배 30분 만에 예배를 마치고 우리 성도들은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성도들의 집들은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가장 불로 인해 위험의 상황에 있었던 분은 성일경집사님 집이었던 것으로 후에 들었습니다. 성집사님 집의 기가 막힌 보호하심의 이야기는 직접 들으시는 것이 더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 때가 11월에 들어선 첫 주였다고 기억이 됩니다.

우리가 교회 건물에 들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입주 허가서가 추수감사주일에 나올 것을 간절히 기도하던 저는 하루 하루가 긴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은 아니고 긴장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11월 30일에 드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으로 기도했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답이 왔습니다. 11월 25일쯤인가 카운티로부터 서신을 받게 되었는데 28일부터 들어가도 되는 것으로 허락이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주일에 예배를 드릴 이틀 전으로 입주가 가능한, 아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허가가 난 것이 아니라 공사를 해도 되는 것의 허가가 난 것입니다. 너무도 기가 막힌 응답이어서 절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예배를 법적으로 드릴 수는 없는 허가의 제한이 있지만 조금은 억지를 부려서 그 날에 주변을 정돈하여 겨우 예배 처소를 만들어서는 2003년 11월 30일에 추수감사절 예배를 우리가 구입한 건물에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3개월의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의 감격은 하나님의 허락해주신 날짜와 합쳐져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저희 CUP설계와 허가를 맡았던 건축가도 매우 놀라워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찍 허가가 나오기가 불가능하다고요. 억지를 부리는 저와 성도들의 기도에도 긍휼히 여기셔서 응답을 해주신 하나님께 지금도 전율을 느끼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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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서신 22

Posted on 2018년 4월 21일 by 원화 조

미국교회는 정한 원칙에서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물을 구입했고, 지금 CUP를 받는 과정 중에 있고, 약간의 공사를 하면 빠른 시일 안에 떠나겠다고 찾아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들의 일정이 있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서운함이 있기도 했지만, 그 서운함보다는 그간 고마움이 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을 찾다가 어렵게 얻게 된 것이 Clairemont Senior Center에 있는 Gym 이었습니다. 그곳은 농구장으로 농구 코트를 2-3개 정도 만들어 놓은 실내 체육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여러 가지 답답함이 있기도 했습니다. 지난 미국교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우리 교회의 모든 짐들을 차에 실어 새로이 구입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한 곳을 정하여 창고로 정하고 그곳에 모든 물건들을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이삿짐 트럭을 렌트하여 그 차 안에 의자와 예배에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 성도의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 다시 체육관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트럭이 도착하면 모든 성도들이 일찍 나와 기다리다가 줄을 섭니다. 아이들로부터 시니어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줄을 서서 차에서 물품들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의자를 두 줄로 늘어서 성도들이 손에 손을 옮겨가며 나르고, 예배에 필요한 음향장비와 영상장비들, 안내를 위한 물품들을 꺼내어 각자가 맡은 곳으로 이동하며 준비를 합니다. 강단을 옮기고, 강대상을 놓고, 등등의 준비가 끝나면 예배를 진행합니다. 실내체육관이어서 우리는 소리로 인해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서 이마저 빌릴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모든 것을 거꾸로의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들어서 옮깁니다. 다른 예배장비를 철거하는 이들의 의자들까지 한 사람이 2-3개의 의지를 또다시 체육과 입구로 가지고 나오고 그 때부터 트럭에 다시 실을 때까지 줄을 서서 역방향으로 함께 사역을 합니다. 가장 나이가 많으셨던 황귀연권사님조차 두 손에 의자를 들고 나오시는 모습은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점심들을 체육관 뒤편에 있는 잔디에 둘러 앉아 마치 야외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음식을 나누고 설거지거리는 각자가 들고 헤어집니다. 그러면 일부의 성도들은 아직 입주는 못하지만 구입해놓은 건물로 가서 우리의 비품들을 준비해 놓은 곳에 다시 내려놓으므로 주일의 일과가 끝이 납니다. 그 과정이 몇 주 진행이 되던 어느 날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미국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에 오면 어느 것 하나 정돈하고 청소할 필요가 없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친교실에서 교제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음식도 우리 부엌이 아니기에 성도의 집에서들 준비해오고 성도들은 깔끔하게 점심을 먹은 후에 정해진 순서대로 설거지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면 되었습니다. 평일에 교회를 사용할 일도 없기에 교회는 우리에게 마치 여행 중에 머물게 된 호텔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틈틈이 저는 우리 자녀들이 문제를 만들어놓은 일로 인해 미국교회에 소환되어 가곤 하지만 성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먹은 것을 잘못 버리므로 하수구가 막혀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 일은 일년 중 한 번, 두 번 일을까?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건물로 가는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손님처럼 살다가 일거리가 많아지는 새로운 교회에 들어가서 그 건물을 우리 것처럼 사용하며 관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혹시, 그 귀찮음에 교회의 화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조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체육관에서의 3개월은 우리 모두에게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의 훈련과 같은 기회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들까지 전 성도들이 자신의 할 일을 찾아 함께 섬기는 그 모습들, 예배와 정도들을 위해 누가 무엇을 지시하지 않아도 바삐 도울 일을 찾는 그 모습들, 예배 5분 전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성도들은 별로 없이 무언가를 돕고 있는 그 모습들, 일렬로 늘어서서 비품들을 나르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성도들의 그 모습을 보면서 준비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만일 준비된 교회에 그대로 들어가게 되었다면 아마도 교회 건물은 준비가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많은 문제들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구입한 교회의 건물이 워낙 손을 댈 곳이 많아서 시작도 전에 성도들이 지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비운동을 하는 기간을 주셨습니다. 또, 새로 이사간 교회 건물이 제대로 된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어수선함을 이곳에서 미리 경험하게 하시어서 우리로 우리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감격할 수 있는 마음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광야의 그 3개월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간이었고, 은혜의 시간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왜 그렇게 미국교회에서 우리를 냉정하게 대했을까? 하는 것조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거조차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본의 아니게 저희의 원망을 들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조차 생겼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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